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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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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염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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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2-07-03 1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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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끈
글/ 염경희
흔히들 말을 쉽게 했습니다.
주위에서 쉽게 해 버리는 말들은 늘 긴 터널에 갇힌 작은 새처럼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가방끈이 짧으면 몸이 고생한다.” 란 말을 들을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고,
얼굴은 불에 익은 듯 화끈거리면서 가슴은 콩닥콩닥 방망이질했습니다. 큰 딸아이 초등학교 보내고 얼마 있으니까 딸아이는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놓으면서 “엄마 선생님께서 이것 부모님 드리래요,” 받아서 읽어보니 가정 환경 조사서였습니다. 순간 뭐라고 대답을 못 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어 알았다.” 외마디 답을 하고는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부모의 학력, 나이, 직업, 가족 상황, 집의 형태(초가집&기와집), 전자제품 유무까지 표기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살고 있던 곳이 읍면 소재지였지만, 여러 집성촌이었는데 부유한 집 아이들은 속된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러움 없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촌지 때문에 상처 받은 일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이 담임 선생님께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한 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때였기에 내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없이 느끼고 경험했던 일이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었습니다.
가정 한경 조사서에 초등학교 졸업&중학교 중태라고 적으면 속으로 또 얼마나 실망하고 상처받을까 하는 염려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고민하다가 결국엔 중학교 졸업이라고 적어서 가방에 넣어 보낸 일이 내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결혼해서도 늘 시집 식구들에게 짓눌린 느낌으로 살았는데 현실에 닥치고 보니까 자신이 점점 더 작아지고 절망적인 것을 느꼈습니다. 둘째 딸 학교 보내면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앞뒤 분간 없이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식구들이 너무나 밉고 싫었습니다. 중학교 입학 한 달 만에 자퇴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결국, 스스로 모든 책과 문구를 사랑채 아궁이에 넣고 말았습니다. 하나하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보면서 하늘이 뚫어져라 목청을 높여 울어보기는 아마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후, 아침이면 먼 발치에서 친구들 하얀 교복에 까만 스커트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고생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마냥 방황만 할 수 없었습니다. 낮에는 밭 일하고 해가 기울어 달밤이면 엄마와 함께 새벽 시장에 내다 팔 상추, 쑥갓, 부추 등을 밤늦도록 다듬고 묶어서 다음날 동이 트면 십 리도 넘는 산길을 걸어서 아침 좌판에 내다 팔곤 했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나섰습니다.
도회지로 나가기로 결심하고 동네 언니가 다니는 양장점에 취직했는데, 정작 하는 일은 가정에서 살림시키고 양장점에서 필요한 허드렛일도 안 시켰습니다. 욕심은 낮에는 기술 배우고 밤에는 야간 학교 다닐 생각으로 서울에 간 것이었는데 생각도 못 한 일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고, 집으로 내려와 생산 공장에 다니다가 때 이른 결혼을 하면서 배움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막상 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보니 배움의 끈이 짧은 것이 이렇게 치부한 일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기르면서 늘 미안한 마음만 가득해 열심히 일해 예쁜 옷 사 입히고 학교 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가난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생각에서 오로지 돈 벌어 애들 뒷바라지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처럼 상처 받지 않게 학교에 잘 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정 환경, 경제적 여유, 가족 간의 대화도 많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주었습니다.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술로 인한 불화가 잦아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 준 딸들이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이 글을 쓰면서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딸!, 삐뚤게 안 나가고 잘 견뎌 주어서 고맙다. 이제는 너의 보금자리에서 환하게 마음껏 웃으며 행복하길 바란다.”
지금 같으면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정서적 학대, 모든 것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정신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들였고, 아이들이 자라 자기 둥지 찾아가 행복한 삶을 살기만을 간절히 바람했습니다.
아이들 대학 졸업만 기다렸습니다.
가정 환경 조사서 받고 느꼈던 절망감과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작은 아이 졸업을 앞두고 고입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직장에서도 주위에서도 제가 배움이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저 나이에 다 고등교육은 받았겠지? 생각했을겁니다. 새벽 4시 30분에 눈 비비고 일어나 부랴부랴 아침 준비해 놓고 5시면 출근했습니다. 하는 일이 조리 종사자였습니다. 숙식하며 연수 받는 기관이었습니다. 출근해서 아침 식사 준비해 놓고 직원들이 교대로 씻고 그나마 조금 얼굴에 분칠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직장에 매이다 보니 검정고시학원에 다닐 시간은 도저히 낼 수가 없었습니다.
짬짬이 시간 내어 문제지와 교재를 활용하여 공부했습니다.
여섯 과목 시험인데 한 번에 합격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쉬운 것부터 합격해 놓고 어려운 것은 차근차근 순서대로 시험을 보았는데, 감독관들은 독수리처럼 매의 눈으로 감시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감독관이 제가 속해 있는 곳의 교육청 관계자들이었는데, 시험장에 들어서니 입구에는 낯익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주무관이 나를 알아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당황해하는 모습을 알아챈 주무관님은 무언의 파이팅을 외쳐주어 더 용기를 낼 수가 있었기에 아주 고마웠습니다.
그 후 두 번째 시험 날에는 ‘조리장님 오늘이 마지막이죠.’ 하면서 손을 잡아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본 시험 결과 전 과목 패스하고 당당하게 합격하여 고입검정고시 자격을 얻었습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 지나가던 길에 반가운 현수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의정부 모 고등학교에서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 모집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떳떳하게 모 모 고등학교 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두 번 생각 하지 않고 원서 제출하고 입학해서 3년 동안 새로운 만남으로 같은 처지, 같은 이유로 미루어왔던 공부를 함께 한 친구들을 잊지 못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잘 알기에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3년 동안 학급 반장을 맡아보면서 포기하려고 하던 학우들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 함께 가자고 설득하여 뜻을 같이한 학우들은 대학까지 같은 길을 걸어 온 행복함에 지금도 만나면 말합니다.
“염 반장님 덕분에 염 대표님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고맙습니다.”
이럴 때면 기쁨은 두 배가 되었고,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3년을 공부하고 졸업하던 날! 두 딸 그리고 두 사위가 꽃다발을 전해 줄 때 그 기분 또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 4년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넓은 세상에서 배움을 얻었습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외로운 싸움에서 승리였습니다. 물꼬를 터놓으면 줄줄이 메마른 논에 물이 고이듯, 배움이란 끈을 잡고 나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고등학교의 배움이 강물처럼 흘렀다면, 대학교는 넓은 바다였습니다.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인연과 배움을 함께 하다 보니 작은 개울에서 놀던 미꾸라지에서 벗어나 바닷가를 누비는 고래 같은 든든함이 채워졌습니다.
4년 동안 과 대표를 맡아오면서 리더십도 높이 평가 받는 좋은 기회였음에 후회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옛말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는 말을 되새겨 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같이 공부한 학우님 한 분이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지금 박사 과정을 밟고 계시는데, 저의 닮고 싶은 사람이십니다. 수전증에 음성 장애까지 이겨 내시고 배움을 향해 정진하는 훌륭하신 모습에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지은이 유순호 [출판사:공감] [배움은 은퇴가 없다] 란 자서전을 읽다 보면, "배움은 배울수록 모르는 게 더 많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은 끝이 없지만 될 때까지 노력해서 하면 작든 크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노력하면 후회는 작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희망을 놓지 않으면 반드시 꿈을 향해 갈 수 있다는 말씀 감히 드립니다. 지금도 늦었다고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시기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도전하셔서 마음의 응어리, 짊어지고 있었던 짐 풀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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