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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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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염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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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2-12-25 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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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궁전
글 / 염경희
한 해의 끝자락에서 아쉬움을 놓을 수가 없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10년 전 정든 곳을 떠나오며 몇십 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를 헐값에 팔고 이곳으로 옮겨 왔다. 임진강이 흐르고 자유로가 한눈에 보이던 곳이었는데 늘 아쉬움에 그립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지금쯤 맑게 흐르던 임진강 물도 꽁꽁 얼어 남극 작은 빙하를 보는 것처럼 겨울 왕국이 되어 있겠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던 곳이라 이른 아침 창밖을 내다보면 사계절의 풍경이 아주 뚜렷하여 물이 드나들던 냇가에는 봄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구름 위에 떠 있었고, 여름이면 마파람이 불어 냉방기 없이도 지낼 수 있었다. 가을날 아주 맑은 날이면 임진강 저편 북녘 하늘 아래 들판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임진강 줄기에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나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늘 아쉬움이 남는 꿈의 같은 곳이었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잦은 불화(不和)로 큰 손해를 보며 팔아야 했던 것이 가슴 아프다.
고민의 연속이었고 끝내 우울증에 이르렀었다.
밤이면 암흑 속을 뚫고 전해오는 임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자유로의 가로등 불빛이 서글프고 그 불빛에 매료되어 증세는 악화하였고, 마지못해 쪽잠으로 겨우 잠들었다가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새벽 시간 상관없이 차를 몰고 직장으로 갔다.
마침 그때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때라 시험공부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직장 사무실에 가서 잠깐 쉬었다가 동료 직원들 출근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채 새벽 근무하는 날이 다수였다.
창밖으로 화려하지만, 쓸쓸히 서로에게 의지하듯 서 있는 가로등과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 가끔 오가는 자유로의 자동차들만이 허전하고 공허하고 텅 비어 버린 속을 달랠 수 있는 벗이었다. 아무런 대답은 없었지만, 힘들고 고달프고 슬프면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속을 털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쯤이나 이 지긋지긋한 올가미를 벗어낼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늘 살얼음판에 서 있는 심정으로 세월 가기만 기다렸던 순간들을 어떻게 말로 다 하고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지난날을 잊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아주 커다란 옹이로 온몸을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딸 모두 시집보내고 난 후였다. 이제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견뎌 낼 힘이 바닥났던 때였다. 가정은 점점 더 흔들리고 지탱할 힘이 없었다. 전혀 길이 안 보였다. 반복적인 생활에 권태감을 느껴 하마터면 아파트 15층에서 자포자기하고 극단적 선택을 할 뻔했었다. 순간 어디선가 별이 보였고 정신이 들었다. 꽉 막혀 터질 듯했던 머리와 가슴이 말을 걸어왔다. “길이 아니면 안 가면 되고, 굳이 나를 포기하는 바보는 되지 마라.” 누군가가 해머로 한 대 때려 정신 차리게 했던 것 같다. 모든 걸 내려놓을 용기가 있으면 정반대로 나를 지켜야 하는 길도 있다는 걸 깨달음 했다.
지금까지 어려움을 준 것이 어쩌면 인내심을 시험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순진하고 나약하여 인내심 테스트를 한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싶다.
그동안 아주 힘들었을 딸들이 생각났고, 지금 내가 잘못되면 이제 막 신혼 생활하고 있는데
아픔을 줄 수 없었다. 너희들은 내가 지켜 주리라는 생각으로 정신 줄 놓지 않고 다시 꼭 잡고 살아오니 웃는 날이 생기더라.
지금처럼 툭 하면 내 배 속으로 낳은 아이들을 학대하다 못해 버리고 끝내는 몹쓸 짓까지 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어떻게 자식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의구심이 생기고 도대체 어떤 정신이 지배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자식이 이렇게 소중한 것을~~
몸만 여자로 살아온 시간이 생각하면 어느새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흐른다.
안 해 본 일 없이 돈 되는 일이라면 다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겨울 방학이면 인삼밭 지붕에 쓰이는 이엉을 엮었고, 종삼 놓아주는 아르바이트도 해 보았다. 이른 결혼 하고도 갖은 부업이란 부업은 다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남들처럼 과자도 사 주고 초라하지 않게 키우려고 아이들 태우는 유모차에는 무거운 부업 물품을 싣고 큰 애는 걸리고 작은애는 업고 다니며 키운 딸들이 지금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면 지금까지 잘 견뎠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하다.
처음 공무원으로 임용되어서 아주 힘들었던 것은 새댁인데 치렁치렁한 고무 앞치마 두르고, 흰 장화 신고 일하는 것이었는데 거기다가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었다. 어른 행세하려고 했고, 일일 고용노동자인데 동네 며느리 취급하고 시어머니 행세를 하며 대접받기를 원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안 할 수도 없고 화장실에 들어가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 자신과 싸움을 걸었고
이 순간을 이겨야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공부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그분들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지금 위치가 내가 지시받아야 하는 위치가 아니라 저의 지시를 받아 저를 도와서 일을 하시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하나둘 고쳐나가면서 서로의 위치에서 잘 지내왔다.
지금은 부러운 것이 없다.
내 몸만 건강하게 지내면 딸들에게 걱정 안 줄 것이고, 나름 딸들도 성장기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 보금자리 잘 가꾸게 해 주는 것이 지금의 엄마로서 의무라 생각한다.
불화(不和)로 꿈의 궁전 같았던 집, 어렵게 마련한 집을 채 3년도 못 살아보고 헐값에 넘긴 것이 아주 아쉽지만, 지금 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다. 그동안 겪어 온 일들이 이 순간을 얻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며 위안으로 삼는다.
마음 편하게 살고 가슴 졸이는 일 없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는 꿈의 궁전인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도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만의 것이고, 나만 알뜰하면 저축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으니 적은 액수라도 보람이 있는 삶이어서 참 좋다. 어쩌면 초년에 고생을 다 했기에 황혼 역에 다다르면서 삶이 수월하지 않은가 싶다.
지난날은 아픔을 지워가고 있는 시점이다. 편하게 글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다.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면서 살아가자. 숨기고 싶었던 지난날이지만 나의 죄가 아닌 것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지난 삶을 웃으면서 하나하나 글로 엮어내려고 한다.
세상에는 나보다 분명 더 힘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만 아픈 곳이 많은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되고, 그분들도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매 순간 용기를 버리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을 학대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란 말이 맞는 말이다. 살아 있어야 이 꼴 저 꼴 보면서 기쁨도 슬픔도 맛보며 세상사는 재미 느낄 테니까.
모든 어려움 견뎌내고 와보니 웃는 날이 더 많은 시간이다.
작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대가 집 저택 부럽지 않고, 꿈을 꿀 수 있는 이곳을 최고로 멋진 꿈의 궁전으로 가꾸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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